바흐가 젊은 시절에 작곡한 오르간곡으로 화려한 기교와 더불어 오르간 특유의 풍부한 울림을 잘 살린 작품이다.
바흐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며, 모든 오르간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명작은 작곡된 이후 널리 연주되기는 커녕 바흐 사후에도 100여년이 넘도록 묻혀 있었으며 그대로 사라질 뻔 하다가 겨우 사본 하나가 발견되어 보존될 수 있었다. 19세기의 '바흐의 재발견'과
펠릭스 멘델스존의 노력 이후로 서서히 인지도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현재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한참 후인 20세기가 지나서이다.
워낙 유명해진 곡이다 보니 수많은 음악 평론가들이 이 곡을 분석했는데, 평론가들마저도 이 곡의 특징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못하고 십인십색의 다른 의견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나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잘 정돈된 곡'이라는 평판이 있는 반면 '중심 주제와 전혀 관련되지 않는 구절도 포함한다'는 상반되는 평가도 있다.
비르투오소적인 곡이라는 주장과 '들리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폭풍을 묘사한 표제 음악에 가깝다는 평도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특정한 이미지를 의도하지 않은 추상적인(abstract) 절대 음악이라는 평도 있다. '특히 오르간에 어울리는 곡이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눈에 띄게 오르간답지 않은 곡이다'라는 정반대의 의견도 있으며 심지어 원래는 오르간이 아니라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작곡 시기는 바흐의 10대 시기인 1704년부터 만년의 1750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의견이 있으며, '바흐가 작곡했다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2](또는 너무 모던하다)'라는 주장부터 '바흐가 아닌 다른 이가 작곡했다기에는 너무 천재적이다'라는 주장까지 극과 극의 평가가 오간다. 이 곡이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의견은 이미 19세기 중반 이 곡이 처음으로 유명해진 이후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후로 논란이 다시 점화되기도 했다.